베어진 나무를 대신해서 묻는 말 - "도시에 관해 시민들 의견을 묻지 않으면 대체 누구한테 물어야 한다는 말이죠????"

삼천동

베어진 나무를 대신해서 묻는 말 - "도시에 관해 시민들 의견을 묻지 않으면 대체 누구한테 물어야 한다는 말이죠???…

길벗 1 388 2023.03.27 13:11
시민이 묻는다! "도시에 관해 시민들 의견을 묻지 않으면 대체 누구한테 물어야 한다는 말이죠????" 전주천과 건산천이 만나는 자원봉사센터 아래의 수양버들이다. 물에 닿을까 말까 싶게 길게 드리운 이 나무는 적어도 십 수 년 이상은 이 자리를 버티고 서있을 것이다.
이 나무가 만들어내는 풍경을 목격한 것은 어제(3월 26일) 오전이다.
나무를 보다가 든 생각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하였다. 내용은 이렇다. “어떤 시장 어느 공무원이 사람과 새, 그리고 물들에 그늘과 이토록 아름다운 쉼의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단 말인가. 나무만이 할 수 있는 일!”
이라고 적었다.

 
얼마 전부터 흉흉한 소식이 들렸다.
 
내가 자주 다니던 길의 전주천과 삼천의 나무들이 잘렸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적어도 몇 십 년간은 자라온 나무들 일 텐데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랬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서 며칠이 지나자 그 일이 전주시내 하천 전역에서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라고 알아보기 시작했다.
요는 하천관리 주체인 전주시가 ‘하상정비’라는 이름으로 직접 식수한 나무를 제외하고 자연적으로 자리 잡아 있던 버드나무 위주로 벌목한다는 내용으로 확인되었다. 알려지기로는 ‘홍수 등의 재해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의 하천관리’라고 설명하는 것 같다.
 
두 가지 문제의식이 들었다.
 
하나는 전주시가 2000년을 전후한 시점부터 자연형 하천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전국적으로 주목받던 하천정책인데 ‘언제 어떤 과정을 통해 바뀐 것일까?’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와 연관되기도 하는데 ‘자연형 하천’은 20여년 이상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논의되고 방향성을 잡아온 정책이며 ‘생태하천협의회’라는 조례에 근거한 거버넌스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 거버넌스가 하루아침에 상실되고 법률적 관리주체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해져도 되는 것인지에 관한 의문이다.
 
여러 가지 확인해 보니 최근의 일은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바가 아니며 급작스럽게 진행된 일로 파악된다. ‘나무가 베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접하고 찾아가 보니 전주시내 하천의 모든 나무들을 벌목하는 일이 추진되고 있음을 뒤늦게 확인했다고 한다.
 
환경단체들은 문제를 제기하고 항의하며 몇 가지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요지는 일단 이 작업을 중단하고 시민들과 논의를 하자는 것이다.(다행하게도 일단은 중단된 것으로 확인된다)

 
의아함이 많이 든다.
 
우선 수십 년간 자리 잡아온 나무들이 ‘왜 오늘에 갑자기 하천에서의 재난을 일으킬 문제아로 지목되고 베임을 당해야 하는 건가?’라는 시점상의 의아함이 든다. ‘그럼 그동안에는 하천에서의 재난을 방치해 왔다는 말이지 않는가?’라는 곳으로 연결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도시정책이 선출직 시장이 제시한 방향으로 변화를 꾀한다 하더라도 시민들의 의견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청사진과 실행계획을 제시한 바 없다. 설사 그런 내용의 공약을 핵심적으로 걸고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행정이란 가능하지 않다.
 
세부적인 사항들을 담아 논의할 주제들과의 또 다른 협의과정을 통해 숙고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서 집행되는 게 도시가 움직이는 룰이다. 도시는 수많은 생각과 의견을 담아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하천관리의 법률적 책임주체’만을 언급하면서 하나의 의견일 수 있는 ‘재난상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밀어붙이는 것은 매우 큰 문제를 야기한다. 더구나 “그런 문제를 왜 민간이랑 협의하냐?”라는 식의 인식과 지시가 있었다면 이는 중대한 문제이다.
 
여기서 민간이란 시민을 뜻한다. 도시가 시민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시장(법률적 책임주체이자 대리자에 불과한)에 의해 마음대로 구획되어도 되는 것을 위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이라 해서 마음대로 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다. 법률적으로 허용된 범위에서 절차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광범위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과 지혜를 구하고 동의를 얻어가며 도시가 굴러가야 한다.
시민들이 시장에게 위임한 권한은 ‘시민들의 의견을 잘 취합하고 정리해 방향성이 공유되고 인정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에 관한 위임에 불과하다. 결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도시가 좌우될 것으로 위임한 바 없음에 분명하다.
 
어느 시장에게도 ‘우리 도시의 색은 노란색이 좋겠어’, ‘이 길은 좀 더 넓히면 좋겠어’, ‘여기는 밀리니까 지하도를 뚫었으면 좋겠어’와 같은 취향과 개인적 철학이 가능하다고 위임된 바 없다.
‘지하도를 뚫었을 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와 ‘이런 변화가 우리에게 가져다 줄 이익과 잃게 되는 또 다른 것들’을 다층적으로 검토하게 되어 있으며 그래왔다. 지금 전주에서 나무를 베는 일은 그래서 위험하고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여긴다.
 
꿋꿋한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전주천에 자리 잡고 있던 나무가 시장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인지, 전주가 시장이 마음대로 이것저것 해도 되는 것인지???라는 의구심을 해소할 의무가 작금의 전주시장 우범기 씨에게 있다.
 
기회가 닿으면 이분(우 시장님)한테 꼭 물어봐야겠다.
"도시에 관해 시민들 의견을 묻지 않으면 대체 누구한테 물어야 한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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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심우진기자 2023.12.15 12:53
안타깝네요~ 나무가 주는 이익들이 많은 데 눈앞에 보이는 것만 판단해 결정하는 일처리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