杏仁의 길 담화 길을 걷는 이유

길 이야기

杏仁의 길 담화 <51> 길을 걷는 이유

편집인 0 409 2023.11.09 21:43

여럿이 함께 걷는 길, 때로 혼자 걷는 길


  


처음엔 ‘혼자서 그냥’ 걸었다. 도시의 이 골목 저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이 집 대문, 저 집 담벼락을 두리번거리는 맛도 내 오랜 관찰의 재미려니와, 전주천을 내려다보며 쭉 허니 거슬러 오르는 화산공원이나 제법 산중에 든 처사인 척 건지산 자락 고운 흙 밟으며 오송지 숲길을 산책하는 일은, 얕은 사색에 알록달록 주름을 새겨 주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 넓지도, 썩 좁지도 않은 전주의 동서남북을 종횡무진하다 고개를 들면, 낯익은 풍경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앞에 다가든다. 눈앞에서 늘 우리를 굽어보는 기린봉이며 완산칠봉,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뚝 선 모악산, 해 질 무렵 붉은 웃음 그득한 황방산 너머 들판과 바다를 향해 너울너울 춤추며 흘러가는 만경강의 저녁 고운 둑방길까지,  삶 주변의 오래된 풍경들이 이렇게 유혹하며 다가서는 것을, 나는 언제라도 외면할 재간이 없었다.

 여러 교통수단 중에서, 나는 11호 자가용이 가장 편하다. 무엇보다도 교통비가 적게 들거니와, 가끔 내뱉는 가래침이나 방귀 말고는 공해도 내뿜지 않으며, 교통체증도 염려할 게 없다. 한 주에 두세 번은 시내버스도 타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하지만, 이때마다 느끼는 것은 다름 아닌 11호 자가용, 나의 두 다리에 대한 연민이다. 

 

여러 해에 걸쳐 조성한 자전거길이 어느 단체장의 치적임에도 불구하고, 전주의 거리가 자전거를 타기에 결코 편치 않다는 것을, 자전거 탈 때마다 씩씩거리며 느끼다 보니, 속도감까지 즐길 수 있는 자전거보다는 언제라도 쉽게 기동할 수 있는 두 발과 두 다리가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자산일 터.  

 어느 해 겨울 함박눈이 지독하게 많이 내려 승용차를 도저히 몰고 갈 수 없었던 어느 새벽에도, 며칠 전 소나기가 억수로 쏟아져 우산을 들어 봐야 겨우 머리꼭지만 비를 그을 수 있었던 그 빗길에도, 매우 늦게 퇴근하는 나를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준 건 다름 아닌 내 두 발과 두 다리 아닌가. 


 이렇게 그저 ‘혼자서 그냥’ 걷는 일만으로도 마냥 즐거웠고 행복했던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이다.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생각도 담벼락 글 한 줄에 담아 두고 나면, 아주 짧은 댓글 하나로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 주는 정에 맛 들여 하루에도 몇 번씩 페이스북 창을 들락거리곤 하던 나였고, 이렇게 서로 작은 덕담을 나누던 ‘페친’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도시 안에 살아도 매일같이 한데 모여 소곤거리거나 쑥덕대거나 왁자지껄 떠들거나 하기가 쉽지 않은 판에, 굳이 대폿집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 ‘SNS’란 게 참 편리하기도 했다. 


 

 페친들과 함께 ‘걷기’로 한 것은 정말 우연한 의기투합이었다. 오월 어느 날, 페친 정상권 박사께서 페이스북 담벼락에 사진 한 장을 찍어 올린 게 화근이었으니. 사진 속 인물은 어느 외국인 영화감독인데, 민속의상을 입고 거리에 나선 이분 복장이 우리 눈에는 마치 누더기를 걸친 거지로 보일 만큼 남루한 행색처럼 비치는 것이었다. 아! 이 이처럼 편하게 걸치고 편하게 다니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다른 페친 윤찬영 교수께서 같은 느낌을 댓글로 단다. 생각이 통했다. 두 사람의 눈이 번쩍였다. 서로 마주하지 않았는데도.

 그래 결국 우리는 “편하게 입고 편하게 거리를 걸어 보자.”라고 약속했다. 장년의 아저씨 세 사람이 5월 5일 낮 1시에 햇볕 쨍쨍한 거리에 나서기로 모의를 한 것이다. 서학동 좁은목 약수터에서 완산동 용머리 고개까지 걷기로 하고 “천년전주 걷기 축제”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아 페북 이벤트로 띄웠다. 잠깐 사이에 무려 열 사람이 함께 하겠다고 나섰고, 자녀가 어린이날 주인공인 페친들은 아이들 손에 붙들려 함께 걷지 못하는 걸 못내 아쉬워했다.  약수터에서 만난 우리는 서로가 늘 만나거나 어울리는 사이는 아니었기에, 정중한 초면 인사와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따뜻한 악수를 교환했다. 


남고산성으로 처음 올라서는 길은 꽤 가팔랐다. 다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걸을수록 숨이 거칠어져 헉헉대는 소리들이 쉬지 않고 들려왔기에 차마 걸음걸이를 빨리 할 순 없었다. 일부러 천천히 걸으려면 팍팍하지만 여럿이 걸을 땐 잘 걷는 사람이 좀 더 너그러워져야 한다.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땀에 젖은 얼굴들이 모두 환하게 피어난다. 전주 시가지 배경으로 사진 한 방 박고 나서 다시 걷기. 남고사 골짜기 봄 풍경 속 이름 모를 꽃나무 사진 찍어 전송하고 나무 이름 알아맞히기. 전주교대 어린이날 행사장에 들러서 아는 이들이 싸 온 음식 얻어먹기. 도로에 내려서니 어디로 가야 ‘마실길’인지 알 길 없어 이정표 찾아보다 투덜대기. 초록바위 올라서다 초록바위 들어가는 길을 못 찾아 쑤군대기. 완산칠봉 산자락에서 화사한 꽃내음 속에 빠져들기. 내려오는 마을 골목길에서 어린 시절 추억 닮은 옛 풍경에 빠져들기. 그리고 남부시장 골목의 하나도 유명하지 않은 초라한 순대집에 앉아 막걸리로 출출한 배 달래주기.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다들 몸은 고단했어도 마음은 한없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막걸리 또는 사이다를 치켜올려 잔을 부딪치다 기어이 한 마디를 외치고 말았다. “우리 또 한 번 갑시다!”.    


 다음엔 좀 더 아름다운 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6월에 떠난 마실길은, 이름하여 “노작노작 변산마실길 걷기 축제”. 토요일 오후 1시, 무려 페친 16명이 서둘러 오전 일을 마치고 도청 주차장에서 만났다. 주중에 비가 내려서 “비 오면 어떡해요!” 걱정하던 사람, “비 오는 바닷가 분위기 더욱 좋아요!” 하고 달래던 사람들이, 뜨거울 만치 화창한 햇빛에 놀라 다들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나왔다. 서로 패를 짜서 승용차 넉 대에 나누어 탔다. 부안군청에 근무하는 김성원 씨는, 우리가 갈 노선을 미리 답사까지 하고는 이웃집에 부탁해 생선회까지 챙겨 두었단다. 자기네 동네에 오는 손님들이니 자기가 대접을 해야 한다나! 

 출발지 격포항에서 본 바다는, 조용하지만 제법 찬란하게 출렁였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서낭당이 있었을 법한 소나무 숲을 지나고, 고운 모래알 반짝이는 백사장과 비릿한 갯내음이 코를 찌르는 낡은 어선들 틈을 지나 걷는 사이, 해는 조금씩 조금씩 서쪽 수평선을 향해 빠져 들어갔다.  

 바윗길 미끄러질까 손 잡아 주고, 잘 얼려 온 생수를 품앗이해 주고, 즐겁기만 한 얼굴들을 사진에 담고, 배낭을 뒤적여 냉커피를 꺼내고, 부스럭부스럭 제과점 빵을 꺼냈다. 


 마실길이란 게 제대로 조성한 길이 아니다. 더러는 소박한 산길도 나오고, 더러는 햇볕에 달궈진 아스팔트 길도 나온다. 하지만 세 시간 남짓 걸어온 길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함께 걷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더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그야말로 노작노작 놀면서 걷는 길이었다. 

 변산마실길은 모항해수욕장의 금빛 황혼 속에서 마지막을 장식했다. 마침 생선 매운탕을 끓여 놓고 소주를 마시던 이 동네 뱃사람들과 어울려 노래판이 벌어졌다. 한 젊은 페친의 넉살에 마음이 동한 모양이었다. 토요일 오후 반나절을 함께 한 우리들의 마실길은, 그리 길지 않았어도 참 행복했다. 

돌아오는 길, 앞으로도 함께 걸어 보자던 어느 페친 얼굴에 예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빨리 가려면 혼자서 가고, 멀리 가려면 여럿이 가라.” 했다던가? 걸음 빠른 이는 뒤에 오는 이를 챙기고, 걸음 느린 이는 앞서 가는 이를 불러 주었다. 여럿이 함께 걷는 페친들의 마실길은 그래서 행복하다.

                                                                                                                                _杏仁(마실길 안내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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