杏仁의 길 담화 (41) 고창 들녘 봄바람

길 이야기

杏仁의 길 담화 (41) 고창 들녘 봄바람

편집인 0 832 2022.03.13 01:21
고인돌에서 운곡습지까지 -고인돌 질마재 100리 길 1코스

 고창의 산은 낮고 들은 넓다. 농사짓기는 예나 지금이나 좋은 기름진 들녘이라서 사람 살기에 그만이다. 고창이 더욱 풍요롭고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은, 제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삼월, 고창 들녘에 서면 서해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코끝에 그 풍요로움을 전해준다.
 천혜의 여건 덕분에 고창지역은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막강한 힘을 가진 지배자가 있었다. 그 옛날의 지배자들이 남긴 자취가, 오늘날 고창 전역에 산재한 고인돌이다. 길가나 논밭 옆, 산비탈 솔숲에 나뒹구는 바윗덩이들이 십중팔구 고인돌이다.

  고창은 세계적인 고인돌 밀집 지역이다. 고창읍 매산리, 죽림리, 도산리, 아산면 상갑리 일대에만 무려 4백47기나 몰려 있고, 고창군 전역에 현재 대략 85곳에 1600기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인돌군은 경기 강화도, 전남 화순의 고인돌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고창을 걷는 길의 이름에도 고인돌이 맨 먼저 올라와 있다. 고인돌 질마재 100리 길, ‘문화생태탐방로’다. 총연장 43.7km에 이르는 네 구간이, 고인돌 길, 복분자·풍천장어 길, 질마재길, 보은길로 이름 붙여져 있다.   

오베이골 왼쪽 죽림리 일대에 펼쳐진 고인돌. 세계 최대 고인돌 밀집지역이라고 한다. 고창읍 서쪽 십 리 안 되는 곳에 북방식 고인돌이 있는 도산마을이 있고, 다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죽림리 매산마을이다. 북방식 탁자형 고인돌 3기, 남방식 바둑판형 250기, 지상 석곽형 45기 등 무려 447기의 고인돌이 이 일대에 널렸다.
 고인돌은 1m 미만에서 최대 5.8m에 이르는 것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최대의 고인돌 밀집지역이다. 그만큼 고인돌 모양도 다양해서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과정, 변천사를 규명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고인돌 밀집지역이어서 역사적 가치 있는 세계문화유산이라 하니 큰 기대를 하고 찾아왔다가는 실망할 수도 있다. 평범한 산등성이나 논밭 한 가운데에 바윗돌들이 드문드문 서 있을 뿐이다. 
 듬성듬성 놓인 고인돌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수십 기가 눈앞에 들어오면 곧 감흥이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곳을 인공적으로 개발할 수는 없으니 이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겠다. 자칫 상상력이 없다면 아무런 감흥 없이 돌아갈 수도 있다. 수천 년 전 선사시대 부족들이 거대한 돌을 옮겨 세우는 광경, 그들의 신성한 땀방울과 엄숙한 마음을 떠올릴 수 있다면 비로소 이곳에서 역사를 생각할 수 있겠다.

 수천 년 역사의 현장을 산책하듯 걸어서 탐방로를 지나면 길은 독고마을과 매산재로 나뉜다. 동양 최대 고인돌은 매산재 쪽에 있다.     
 운곡리 오베이골에 닿으면 어리연꽃과 수련, 노랑꽃창포 같은 갖가지 식물이 자라는 생태습지가 있다. 물잔디, 검정말, 왕버들나무 등 습지식물뿐만 아니라 쑥부쟁이와 억새밭의 자생지이기도 한 습지식물의 보고다. 오베이골 운곡습지는 2011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오베이골은, 다섯 방향으로 흩어진다고 해서 붙은 '오방골'의 전라도 사투리다.  이곳은 매산재, 행정재, 백운재, 호암재, 굴치재로 넘어갈 수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좌치 나루터에서 질마재를 넘어온 사람들이 고창장에 가려면 꼭 이곳을 거쳐야 했다. 지형이 호랑이 콧등과 닮아서 호비골, 호비동이라고도 했다. 
 
 운곡저수지 길은 호젓한 산책로다. 드넓게 펼쳐진 호수 위를 바람이 먼저 날아가고 그 뒤를 텃새가 날고, 풀벌레들이 따라간다. 나그네의 발자국 소리는 숲을 넘나드는 산짐승들의 발자국에 섞여 든다.
 운곡(雲谷)이라는 지명은, 아침, 저녁 짙은 안개가 낀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 '구름골'이다. 운곡리, 용계리 9개 마을 158세대가 살던 지역이지만, 그 흔적은 1984년 운곡저수지 물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댐이 생기면서 이 일대 55만 평이 저수지가 됐다. 지금도 길을 걷다 숲속에 더러 허물어진 돌담과 무너진 집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수몰지역 안에 한지공장 일곱 군데가 있었다는 역사를 보여주듯 군데군데 닥나무가 눈에 띈다. 



 길가 우거진 숲에서 불쑥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운곡 고인돌이다. 상석 높이만 5m, 가로길이가 7m인 동양 최대란다. 표면에는 거뭇거뭇 수천 년 세월이 묻었으나 비바람에 씻긴 듯 반질반질한 바위가 마치 단단한 갑옷을 입은 장수 같다.
 저수지 길을 돌다 보면 운곡 샘과 용계 숲을 지나 용계리 청자도요지에 닿는다. 고운 흙이 있어서 청자를 빚어냈고, 바다가 가까우니 개성이나 중국으로 오가는 배에 많은 청자를 실어 보냈을 곳이다. _ 김행인(杏仁. 길 안내자,시인)

, , , , , , , , , ,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