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동마을신문 연중 기획 -그땐 그랬지. 어른들에게서 듣는 옛이야기 6

평화동

평화동마을신문 연중 기획 -그땐 그랬지. 어른들에게서 듣는 옛이야기 6

편집인 0 1,120 2023.07.11 03:51

1960~70년대는 이제 역사책이나 소설책에서나 접할 수 있는 시대다. 마치 오래된 영화 속으로 들어가듯, 어르신들에게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날과 사뭇 다른 삶의 문화를 엿본다.

평화동마을신문이 연중 기획으로 마련하는 그땐 그랬지’, 어른들에게서 듣는 옛이야기 6화는 각각 두 분이 직접 들려주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모았다.

 

시암의 추억

이희숙(62)

요즘처럼 더운 여름철이 되면, 그 옛날 아버지께서 집 마당 시암(우물)가에서 등목하실 때마다 어푸! 어푸!” 하시던 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울리는 듯하다. 아차! 시암이라고 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겠구나! 우물이나 샘을 전라도 사투리로 시암이라고 했다.

내 어린 시절에는 지금 흔히 사용하는 수돗물이나 정수기 대신 시암 물을 길어다 마시고 밥도 짓고 세수도 했다. 동네 남정네들에게는 시암을 파는 일이 꽤나 큰일이었다.

지금이야 대형 냉장고들이 집집마다 부엌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냉장고 대신 마당에 대신 시암 냉장고가 있었다. 그 시절 시암 물에선 지금의 신식 냉장고와 맞먹는 냉기가 도는 덕분이었다.

보통 여름철이면 김치가 시어 터질까 봐 김치통을 줄에 매달아 시암 깊숙이 넣어두곤 했다. 우리 집 시암 냉장고에도 여름이면 어김없이 빨간 플라스틱 김치통이 물에 닿을 듯 말 듯 줄에 매달려 있었다.

식사 때가 되어 시암에서 김치통을 끌어 올려 뚜껑을 열 때면 하고 하얀 냉기가 피어오르고, 새콤하게 익은 김치 냄새가 코를 찌르며 군침을 돌게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의 김치 냄새가 생생하기만 하다.

아버지께선 바깥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종일 흘린 땀을 씻어내려고 으레 시암 가에서 웃통을 벗고 등목을 청하셨다. 코찔질이 막내딸이던 나는 아버지 등목 당번이었다. 시암 가에 엎드리신 아버지 등에 아이스 깨끼 얼음과자 같이 차가운 시암 물을 부어드릴 때마다, 등에서 목덜미를 따라 입가로 흐르는 시암물을 어푸! 어푸!” 품어내시던 소리. “! 이놈아. 살살 혀! 허허허!” 웃으시며 벌떡 일어나 도망치시던 아버지, 그 모습이 그립기만 하다. 내일은 100살 되신 우리 아버지 뵈러 친정에 가봐야겠다.

찰흙범벅 내 얼굴

박월선

(61. 효자동)

 

가물가물하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어린 시절 기억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미술 시간에 사용할 찰흙을 가져오라고 했다. 내가 다니던 완도 초등학교 뒷산에는 마침 찰흙이 섞인 언덕이 있었다.

우리 반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그곳으로 몰려갔다. 먼저 도착한 개구쟁이 남자아이들이 잽싸게 찰진 찰흙을 긁어내고 있었고, 언덕 위에 자리를 잡은 아이들은 벌써 찰흙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찰진 흙을 긁어낼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나는, 땅이 파헤쳐져 동굴처럼 생긴 곳을 발견했다. 언덕 밑에서 위쪽으로 기어 들어가면 찰흙을 긁어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언덕은 흡사 계단처럼 타고 오를 만했다. 밑에서부터 언덕을 기어오르느라 고개를 푹 숙이니 코앞에 땅만 보였다. 몇 발짝 언덕을 오르고 있는데, 위쪽에서 굴러간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필 우리 반에서 늘 나를 괴롭히곤 하던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겨우 땅만 보며 언덕을 오르고 있었기에 언덕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미처 몰랐다.

굴리지마! 나 올라간다.” 하고 외쳤지만, “굴러간다. 굴린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무언가 !”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은 강한 충격에 휩싸이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굳어진 찰흙덩이가 내 머리를 강타한 것이었다. 그것도 언덕 위에서 굴러 내려오며 가속도까지 붙어서다. 순식간에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진 나는, 머리가 터져서 흘러내린 피에다 찰흙까지 달라붙어 얼굴이 그야말로 뒤범벅되고 말았다.

그때 그 아이의 이름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그날의 사고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닷가 마을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그 후로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일이 없었다.

그 아이도 지금은 나처럼 중년을 훌쩍 넘겼을 것이고, 어쩌면 우연히 곁을 스쳐 지나간다고 해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친구는 잊혀졌지만, 그의 존재는 내게 추억으로 남았다.

_정선아 기자

2023‘ 평화동마을신문 연중기획 <그땐 그랬지!> 인터뷰에 참여해 구술해주실 분을 모십니다. 남녀 구분 없이 58(1965년 이전 출생) 이상인 분으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줄 소재가 있으면 됩니다.

이야기 소재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살던 옛 동네의 풍경이나 오늘날과 달리진 모습도 좋고요. 어린 시절, 학창 시절, 청년시절, 군대 간 이야기, 신혼 시절, 직장 이야기 등등 무엇이든 좋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오늘날 디지털 시대와는 무척 다른, 2000년대 이전 아날로그 시절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연락처: 편집인(010-8411-0200), 정선아 기자(010-2929-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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