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품, 비빔밥

칼럼

<수필> 엄마의 품, 비빔밥

편집인 0 167 2023.12.23 20:47
이남숙

엄마는 전주비빔밥이다. 전주 대표명물 비빔밥에는 못 들어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들의 향연들이 엄마의 굴곡진 삶처럼 고지대다. 각각의 색들이 조화를 이루고 눈으로 손으로 맛으로 색색 동동 전주만의 청아한 기와처럼 어울림을 같이 한다.
그 속에 눈물도 사랑도 참기름처럼 녹아있다. 세상의 풍파 속에서 각기 나름의 솜씨를 뽐내듯 단연 1등으로 자기를 내세운다. 마치 엄마의 크고 굵어진 손가락의 세월 높이처럼 말이다. 전주비빔밥은 엄마 품이다.
 비빔밥은 새로 만들던 속을 개워내던 이것저것 한 데 버무리면 그리저리 어울린다. 사람들의 부대낌과 삶처럼. 그렇다고 맛이 한결같지는 않다. 사람에 따라서 성격에 따라서 산지에 따라서 정성에 따라서 공기에 따라서 맛이 다르다. 내 맘대로 니 맘대로 밥이 될 뿐이다. 그래서 전주비빔밥은 엄마처럼 친근하다.

전주비빔밥은 한결같음이다. 마치 초록 바위 같다.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사람들을 교수형으로 죽인 후 전주천으로 밀어 넣어 수장 시킨 순교 터인 초록바위. 비빔밥은 엄마한테 갈구하는 사랑처럼 초록바위의 고귀하고 높음이 가득 차는 감사함을 담는다. 누구에게나 인사한다. 참 맛있다고 감사하는 마음을 올린다. 비빔밥은 엄마처럼 한결 같은 감사함을 닮아있다.

비빔밥의 하얗고 노란 반들반들 지단과 청포묵은 두레박속이다. 형제와 시댁과 남편과 친정과 자식과의 울고 웃는 행복 속이다. 계절의 조화로운 색을 지닌다. 연화정의 수련처럼 말이다.
전주 관광지인 연화교를 건너며 인생을 연 잎 속에 감싸 허허실실 웃는 이슬처럼 덕진은 늘 상 내 곁에 있다. 마치 엄마웃음을 찾는 아이 같다. 갈등과 때론 타들어가는 헛함과 질림처럼 천 개의 얼굴로 조화를 매질하신 어울림이 있다. 엄마는 그렇게 낮은 곳은 높게 높은 곳은 더 높게 조화를 이끌어내셨다. 마치 비빔 밥 속의 청포묵과 지단이 진흙 속에 피어내는 연꽃처럼 말이다. 전주비빔밥은 계절의 조화이다.

비빔밥의 빨간 당근은 겨울 한 서리를 이겨내고 솟아나는 단단하고 투박한 봄의 여전사다. 비옥한 토지가 매섭게 담근질해서 개워냈다. 그러니 당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주비빔밥은 사대문 안의 전통시장인 남부시장처럼 차별하지 않고 품어준다. 남부시장은 기린봉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이게 만든다. 마음이 정상이다. 올라가는 길이 험해도 치명자산과 어깨를 같이하며 하느님과 부처가 공조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는 그저 모든 것이 다정스럽다. 다정함을 가지고 싶으면 오르면 된다. 엄마는 남부시장 과일장사, 5일시골장, 건어물 장사 등 안 해본 것 없는 억척인생 사내대장부이셨다. 산꼭대기 연탄배달을 머리에 이고지고 만삭의 몸으로 리어카를 끌 때는 태어난 막내의 이마에 빨간 줄이 있을 정도로 한 서린 겨울 동파 장군보다 강인함을 같이했다. 그 빨간 당근처럼 어디에나 조화를 잇는 꿈틀거림의 아우성이 다섯 남매가 엄마를 닮고 사는 이유를 만드셨다. 마치 기린봉의 하늘을 닮은 당근처럼 말이다. 그래서 전주비빔밥은 구름도 태양도 품고 있다.

비빔밥의 고사리는 봄이면 마른 땅 위로 솟아나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여긴 67년 인생 엄마의 고단함이 있다. 그렇게 오가던 전주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이다. 경기전의 태조 어진은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 건국자의 초상이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지방의 진전이다. 조선의 역사 500년 동안 개똥구리가 굴리고 굴려 만든 왕방울이 지쳐 버린 작은 몸부림 속에서 꿈틀거린다. 1914년에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코와 비잔틴 양식을 건축한 3대 성당 중 하나인 전동 성당의 아름다움이 한옥마을이 비빔밥과 함께한다. 큰 딸래미 고등학교 떨어지던 날 당신의 눈물을 하늘에 감추고 지고 나고 지고 자라는 고사리처럼 또닥또닥 다시 일어나게 하셨다. 경기전의 나무들은 다 지켜보았다. 엄마의 67년 인생이 그곳 경기전에 있다. 마치 전주의 비빔밥의 역사와 전통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비빔밥의 호박은 살아서도 푸르고 죽어서도 푸르다. 된장국에도 볶음에도 둥굴둥굴 어디에다 맛이 된다. 한옥마을 거리와 이목대 오목대도 그렇다. 사람의 성별이나 나이를 탓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조미료가 된다. 아직도 풋풋하다. 걸을수록 이웃이 된다. 막걸리 한잔에 싸움대장이셨다가 상담사이셨다가 중매자이셨던 어머니도 투박한 손을 내게 덮었다. 모든 이의 본보기셨다. 꽃도 씨앗도 잎까지도 줄기며 늙은 호박조차도 가치 있는 것처럼 한옥마을 둘레의 소리터, 풍패지관, 전라감영 등의 뒹굴림은 호박같이 사회적 인간으로 눈뜨게 하셨다. 마치 전동성당의 종소리 같다. 비빔밥은 엄마의 가치관이며 사랑이다.

비빔밥의 콩나물은 하루도 빠짐없이 물만 부어주면 거꾸로 매달려 강인한 생명력과 정성을 키우면서 빽 없고 돈 없는 산동네 서민들의 주식이다. 엄마는 반장 일이며 통장 일이며 동네 일까지 마다 않고 가난한 언덕 산밑 주민들의 깡다구로 방패막이와 서러움 막이 되어 주셨다. 구불구불 자만 벽화마을은 이리저리 기웃기웃 벽 속에서 사람들이 반긴다. 어떤 이는 천사가 되고 어떤 이는 꽃잎이 되기도 한다. 개 짖는 소리도 들리는 자만마을은 어디나 소리 나는 콩나물처럼 바로 지척에 있다. 내려다보는 엄마가 온기를 주듯이 전주비빔밥은 천사가 숨어있다.

비빔밥의 야채들은 담장 없는 집 밖의 작은 서너 평 짜 투 리를 호미로 파고들며 만든 텃밭에서 상추며 고추며 쑥갓이며 가꾸어 올라오는 싱싱함이다. 엄마는 때론 마루턱에 걸터 앉아 노래 부르게 하고 보리밥에 물 말아 된장 찍어 먹으면서도 언제나 푸른 야채처럼 이웃과 나눔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정성이셨다.
객리단길이 그렇다. 발걸음들이 가볍고 손에 흰이를 드러내고 웃는 청춘들이 한바탕 후려진다. 모양도 내음도 음미도 다르지만 전주의 온화한 기온 탓에 얹혀있는 푸른 채소들은 객리단길의 한바탕 전주처럼 비빔밥은 푸르르며 부비부비이다.

비빔밥의 버섯엔 마른 고목에 희망이 매달려져 있다. 엄마는 야채장수 젓갈 장수가 지나가면 밥 먹었어? 물어보고 우리 밥상에 숟가락 얻어 밥 먹게 하시면 철없는 동생은 그냥 숟가락 놓고 나가버렸다. 그 미안함을 메꿔줄 전주 수목원은 고속도로 입구에서부터 사람을 맞는다. 손짓하지도 않는다. 그냥 발걸음이 그리 돌려질 뿐이다. 가보면 없는 것이 더 많다. 있는 것에서만도 희열을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가치 있고 존경받으며 동등하다. 버섯의 향내처럼 평등과 나눔과 배려와 봉사와 희망을 음미하는 비빔밥 속에는 전주 수목원도 있다.

비빔밥의 고기는 명절이나 생일 때 정도만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귀한 고기는 이제는 흔해빠진 도로처럼 있다. 전주의 풍남문도 그렇다. 교통량이 많은 곳에 위치해 가까이서 볼 수 있고 남부시장과 연결되어 있어 먹거리도 풍부하다. 한옥마을의 야경도 빼놓을 수 없다. 휘익 한바퀴의 여정으로도 감정이 새롭다.
전주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남편을 만나 살면서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그렇지만 생존에 필요한 곡식처럼 그 자리를 지키는 남편처럼 풍남문도 산소처럼 희망처럼 사탕처럼 귀하게 달콤하게 전주비빔밥 속에 녹아있다.

비빔밥의 고추장은 때론 혹독하게 때론 희망차게 붉은 열정과 맛남이 있다. 니가 아들로 태어났어야 더 좋았겠지만 내 딸인 게 어디여?. 엄마가 살아가는 힘도 되고 니가 우리집 대들보가 되어야 한다는 꾐에 빠져 오빠도 이겨먹고 동생도 혼내가는 잔다르크가 되었다. 전주 향교도 그렇다. 전통문화 계승과 보존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이곳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전통혼례도 가능하다. 가을이면 노랗게 차례 지켜 떨어지는 은행 잎 속에도 예절이 있다. 이곳은 현재와 미래와 과거가 함께 산다. 조화롭다. 그렇게 세상 속 소금처럼 간장처럼 고추장처럼 전주 비빕밥은 끼쟁이다.

비빔밥의 참기름과 깨소금은 훈내나고 향기 풍기는 더하고 더할 것이 없는 어울림이다. 깨소금과 참기름처럼 향기 나게, 손뼉치게, 용기나게 비빔밥에 향을 쏟는다. 완산칠봉의 꽃 공원도 그렇다. 40년 동안 가꾸었던 동산을 한 시민이 전주시에 기증하면서 봄이면 진동하는 향기 속으로 들썩거린다. 어귀에는 파전도 막걸리도 있다. 전주비빔밥은 완산칠봉 꽃내음이 넘쳐나게 모두에게 향내 내어준다. 전주비빔밥의 향내는 만리장성이다.

놋그릇 보시기 안의 하얀 쌀밥 위에 일렬종대 양념들은 오방색을 넘는다. 동그라미 원안에 조화와 어울림과 눈까지 웃음짓고 목구멍의 목젖이 어울렁 거리도록 사랑과 정성과 지혜와 배려를 담았다. 눈 또한 즐겁다. 엄마의 품속에서 병아리들이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전주의 비빔밥이다. 시원하게 쏟아낸 다섯 마당 속에서 한과 설움의 만남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쫘악 펼쳐진 첫마중길처럼 전주 비빔밥은 역시 일등이다.

비빔밥에 없는 것이 뭘까?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비빔밥은 엄마다. 67년의 짧은 마지막 이승을 떠나실 때 커다란 보물 보따리 떼굴떼굴 굴러주시며 환하게 웃던 어머니는 전주의 비빔밥처럼 조화로움과 맛과 서러움과 나눔과 배려와 향내와 웃음과 화해와 어울림과 보고픈 맘 가득한 엄마 마음이 그대로 가득이다. 전주비빔밥에 없는 것이 뭘까?
 
(편집자 알림) 이 글은, 2023년 제 6회 전주시민 문학제 작품공모전 대상 수상작입니다. 언론매체에 따로 게재될 지면이 없는 작품을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필자의 동의를 얻어 평화동마을신문 지면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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